제목 한겨례] 사설.칼럼 기고 - 소셜믹스, 그 닫힌 문을 열 열쇠 / 김영욱
작성자 김영욱 (yokim) 작성일 2020.09.13 조회 5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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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m.hani.co.kr/arti/opinion/because/960434.html#cb

“야! 임대야, 이리 와.” 영구임대아파트 답사 도중 한 아이가 외치는 소리를 들었다. 놀이터에서 벌어진 일로, 분양아파트에 사는 어린이가 임대아파트에 사는 어린이를 부르고 있었다.

임대아파트를 둘러싼 사회적 갈등이 크다. 최근 정부에서 발표한 ‘공공주택지구’에 대한 논란이 임대주택에 대한 부정적인 시각을 더 부추기고 있다. 공공주택지구는 주택 공급을 촉진하기 위해 용적률을 500%, 층수는 50층까지 완화해준다. 대신 개발이익은 임대주택으로 70~90% 환수한다. 그런데 재건축조합은 말할 것도 없고 지방자치단체장까지도 우리 동네에서만은 임대주택은 안 된다며 시위한다. ‘포용 사회’를 국가의 비전으로 내세우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집권여당의 정치인들마저 임대주택을 거부하는 님비(내 집 앞에는 혐오시설을 둘 수 없다)를 외치고 있다. 어른들이 임대주택을 이런 시각으로 보고 있으니 아이들이 임대아파트에 사는 친구를 무시하는 건 어찌 보면 자연스러운 일일지도 모르겠다.

사실 임대주택의 역사가 오래된 선진국에서는 ‘소셜 믹스’(Social Mix)에 관해 많은 고민을 해왔다. 이제 우리도 다양한 소득계층이 서로 섞여서 사는 소셜믹스에 대해 더 많은 지혜를 모아야 한다. 소셜믹스의 실천을 위해서는 첫째, 건물 외관을 보아서는 어느 집이 임대주택인지, 누가 임대주택에 거주하는 입주민인지를 모르게 해야 한다. 영국에서는 건물의 모양이나 위치로 임대가구를 구분할 수 없도록 하거나 민간임대주택에 거주할 때 임대료를 지원해주는 ‘테뉴어 블라인드’(Tenure Blind)를 시행하고 있다. 반면 현재 우리가 시도하고 있는 소셜믹스의 방법인, 한 아파트단지 안에서 동으로 임대주택을 구분하거나 한 동에서 몇 호 라인으로 구분하는 것은 해결책이 되지 못한다.

둘째, 임대주택을 일정 가구 이상 의무적으로 짓게 해야 한다. 우리는 민간에서 재건축이나 재개발을 할 경우 임대주택을 인센티브 제도로 유도하고 있다. 그러나 일부 재건축단지는 임대주택을 짓지 않기 위해서 인센티브를 받지 않고 기존 가구수만큼만 재건축을 한다. 네덜란드는 오랜 연구를 통해 ‘매직 믹스’(Magic Mix)라는 제도를 시행하고 있다. 매직믹스란 주택 개발을 할 때 40%는 분양가 통제를 받는 주택, 40%는 임대주택, 나머지 20%는 가격 통제를 받지 않는 분양주택으로 구성하는 것을 말한다.

셋째, 하나의 주택단지가 300가구 이하가 되도록 주거단지의 블록(도로로 둘러싸인 일단의 구역)을 구성해야 한다. 우리는 주거단지를 큰 블록으로 만든다. 심지어 단지마다 담장을 치고 입주자만 통행할 수 있는 출입문을 만든다. 도시는 점점 폐쇄적인 집단으로 구성된다. 선진국에서는 오랜 경험 끝에 블록 하나의 적정 크기를 300가구 이하를 수용하는 100m×100m 이하로 규정하고 있다. 많은 학술연구는 단지의 크기가 그 이상이 되면 입주민 간의 공동체 형성과 지역사회와의 소통에 부정적인 경향을 보인다는 사실을 제시한다.

넷째, 임대주택은 저소득 계층만을 위한 것이 아니라는 인식의 전환을 유도할 필요가 있다. 소규모 물량이라도 중산층을 위한 임대주택을 확보해야 한다. 아직은 저소득층을 위한 임대주택 물량의 확보가 우선하지만, 소량이라도 중산층을 위한 임대주택을 지어 이들은 위한 ‘주거 사다리’를 구축할 필요가 있다. 임대주택의 비율이 60%에 이르는 오스트리아 빈에서는 가난한 사람부터 중산층까지 같은 임대주택에 거주한다.

“사람들 사이에 섬이 있다. 그 섬에 가고 싶다.” 시인 정현종은 사람들의 만남에서 형성되는 따뜻한 인간관계를 마음의 안식처인 ‘섬’으로 노래한다. 우리 사회에는 이와 다른 형태의 ‘섬’이 존재한다. 각박한 현실 속에서 따뜻한 마음의 안식처로서의 ‘섬’이 아닌, 타자를 배제하는 방향으로 아파트단지를 지어 스스로가 자신을 격리시키는 ‘섬’이 된다. 또 사회적 약자들을 특정한 구역에 집단적으로 거주하게 하는 ‘섬’을 만든다. 인간은 다양한 모양의 집에 다양한 계층이 이웃하여 살면서 서로를 이해하게 된다. 이 평범한 진리를 이제는 실천해야 한다. 더 늦기 전에.

원문보기: 
http://m.hani.co.kr/arti/opinion/because/960434.html#cb#csidx8724b287b2eee7d9254f53c7dd336f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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